최근 블록체인 기술의 확산과 함께, 전통 금융을 대체하거나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자산 운용 방식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실물자산을 디지털 토큰으로 변환하는 RWA(Real World Asset)가 있습니다. 특히 미국과 한국은 각각의 금융 시스템과 규제 환경 속에서 RWA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이는 국가별 시장 전략에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양국의 자산토큰화 현황, 규제 인프라의 차이, 그리고 기업들의 전략을 집중적으로 비교 분석하여 글로벌 금융 생태계 속 한국의 위치를 분석하겠습니다.
자산토큰화 흐름: 미국과 한국의 온도차
RWA(Real World Asset)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실제 자산을 디지털 토큰 형태로 전환함으로써, 거래 효율성과 접근성을 향상시키는 기술입니다. 부동산, 금, 미술품, 채권과 같은 실물 자산이 토큰화되면, 이를 분할 소유하거나 글로벌 투자자 간 자유롭게 유통할 수 있어 새로운 투자 시장을 열 수 있습니다.
미국은 이 기술에 대해 매우 선제적이고 실용적인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골드만삭스, 블랙록, JP모건 등 굵직한 금융기관들이 이미 자체 플랫폼을 통해 실물자산의 디지털화 실험을 마쳤으며, 일부는 상용 서비스로도 진입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미국은 민간기업의 기술 주도와 정부기관의 규제 협조가 조화를 이루며 RWA 생태계를 빠르게 성장시키고 있습니다. 2023년 기준 미국의 RWA 기반 자산 운용 시장은 약 40억 달러 규모로 추정되며, 이는 매년 급속도로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반면 한국은 기술 수용도는 높으나, 제도적·사회적 리스크 우려로 인해 도입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린 편입니다. 특히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한동안 이어지면서, 디지털 자산에 대한 제도화 논의 자체가 지연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2024년부터 금융위원회가 ‘토큰증권 가이드라인’을 도입하며 점차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NH투자증권, 신한투자증권, 카카오 그라운드X 등의 기업들이 이 가이드라인에 기반한 파일럿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테스트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두 나라의 이런 차이는 정책 결정 구조, 금융 시스템의 유연성, 그리고 시장 참여자의 적극성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은 규제의 명확성과 기술 수용성이 높은 반면, 한국은 규제가 선제적이고 보수적인 구조를 갖고 있어 혁신적인 기술의 상용화에 시간이 더 걸리는 상황입니다.
규제 차이에서 드러나는 국가 간 현실
RWA 도입을 위한 핵심 전제는 명확한 법적 기반과 제도화된 규제 환경입니다. 미국은 일찍부터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 자산에 대한 법적 정의를 마련하고,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규제 당국과 협업해 제도권 내에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미국 SEC는 자산토큰화에 대해 증권법 적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으며, 프로젝트별로 예외 조항(Regulation D, S, A 등)을 제공해 사업 추진을 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은 디지털 자산의 구분 체계를 명확히 하고, 이를 감독하는 여러 기관(SEC, CFTC, OCC 등)이 각각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RWA는 대부분 증권형 디지털 자산(Security Token)으로 분류되며, 이에 따라 기존 금융규제 프레임워크에 포함되는 방식으로 제도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투자자 보호와 시장 신뢰도를 확보하면서도 기술 혁신을 저해하지 않는 균형 잡힌 규제 접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2023년까지 명확한 법적 정의 없이 암호화 자산 전체를 포괄적인 위험군으로 인식해 왔으며, 디지털 자산과 관련된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통해 제한적으로 허용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2024년 발표된 ‘토큰증권 가이드라인’은 실물자산을 기반으로 한 증권형 토큰 발행을 제도권 금융시장 안에서 운영할 수 있도록 허용하며, 관련 생태계 조성의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규제 접근은 기존 금융기관 중심의 통제형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 블록체인 기반 스타트업이나 글로벌 확장을 원하는 기업에게는 여전히 제약이 큽니다. 예를 들어, RWA 토큰을 거래할 수 있는 2차 시장이 제한적이며, 발행 주체에 대한 요건이 엄격하여 실제 활용도가 떨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실험+규제’를 병행하는 개방형 구조인 반면, 한국은 ‘규제 우선’의 신중한 제도화를 통해 도입 속도에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이는 기업의 전략 수립 방식과 시장 참여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기업별 전략: 글로벌 확장 vs 국내 실험
미국의 기업들은 RWA 생태계에서 명확한 전략을 기반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Centrifuge는 실물 채권을 담보로 탈중앙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Ondo Finance는 미국 재무부 채권에 기반한 RWA를 활용해 디파이 투자자들에게 안정적인 수익 모델을 제공합니다. 이들은 SEC에 등록된 규제형 상품을 통해 투자자 보호를 전제로 하면서도, 분산화된 금융 인프라 구축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블랙록, 골드만삭스, 시티그룹 등은 기존 금융 시스템에서의 신뢰성과 자산 운용 경험을 바탕으로 RWA 도입에 앞장서고 있으며, 투자자에게 기존 자산보다 더 빠르고 유연한 투자 수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미국 기업은 기관 중심의 제도화 전략과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한 사용자 중심 인터페이스를 동시에 발전시키는 방식으로 빠르게 시장을 선점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아직은 ‘파일럿 중심의 제한된 시범 도입’에 머물고 있습니다. NH투자증권은 부동산 수익권을 기반으로 한 RWA를 블록체인 상에서 발행하는 테스트를 진행 중이며, 신한투자증권은 자체 플랫폼을 통해 증권형 토큰(STO) 기반의 자산 운용 솔루션을 설계 중입니다.
한편, 카카오의 블록체인 자회사 그라운드X는 디지털 부동산 플랫폼을 기획 중이며, 글로벌 시장에서 실험적인 모델을 먼저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부 한국 블록체인 스타트업은 싱가포르, 스위스, 두바이 등 규제 환경이 유연한 국가에서 법인을 설립하고, 한국에서는 간접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우회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업 전략의 차이는 규제 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미국은 이미 상용화와 투자 유치가 가능한 단계에 진입한 반면, 한국은 아직 기술 가능성을 시험하고 제도에 적응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추가적인 규제 완화 및 유연한 제도 정비가 없다면, 국내 기업은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될 위험성도 있습니다.
미국과 한국의 RWA 도입현황을 비교해보면, 제도화 속도, 기업의 적극성, 규제 유연성 등 모든 측면에서 뚜렷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미국은 법적 기반을 조기에 마련하고, 기업 주도의 생태계를 통해 글로벌 RWA 시장을 선도하고 있으며, 한국은 점진적 규제 정비를 기반으로 파일럿 중심의 제한된 실험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투자자와 기업은 이러한 국가별 특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전략적 대응을 마련해야 합니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지만, 이를 둘러싼 제도는 국가마다 상이하므로 글로벌 진출을 고려하는 기업이라면 초기부터 규제 리스크를 분산하는 다국적 전략이 필수입니다. RWA는 단순한 금융 상품을 넘어 미래 금융 주도권을 결정짓는 핵심 기술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 흐름의 본질을 이해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