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특히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한 국가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전통적인 금융 시스템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르며, 다양한 경제적·정치적 배경 속에서 각국의 선택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대표적인 사례인 엘살바도르를 중심으로, 비트코인의 법정화폐 채택 현황과 그에 따른 국제적 규제 동향까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비트코인의 법정화폐 채택 의미
비트코인이 처음 법정화폐로 채택된 국가는 중남미의 엘살바도르입니다. 2021년 9월, 엘살바도르는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미국 달러와 함께 공식 통화로 인정하며 전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는 국가의 통화 주권을 강화하고, 해외 송금 수수료 절감 및 금융 접근성 향상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한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은 국제통화기금(IMF) 및 세계은행 등의 반발을 불러왔고, 내부에서도 경제 불안정성과 변동성 우려가 제기되었습니다.
엘살바도르는 비트코인 채택 후, 디지털 지갑인 ‘치보(Chivo)’를 전국에 보급하며 국민들이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2022년 정부 발표에 따르면, 약 60%의 성인 인구가 치보 지갑을 설치했고, 설치 시 제공된 무료 비트코인(30달러 상당)을 한 번 이상 사용한 비율은 20% 내외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23년 국제개발연구소(NBER) 보고서에 따르면, 비트코인을 실질적인 결제 수단으로 지속 사용하는 비율은 전체 인구의 약 1.6%에 그쳤습니다.
또한, 비트코인 결제를 지원하는 상점 비율은 전체 상인의 약 20%로 조사되었으며, 이 중 절반 이상은 실제 결제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이러한 수치는 비트코인의 실제 활용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비트코인 채굴을 위한 친환경 인프라 투자와 함께, ‘비트코인 시티’ 조성, 국채 매입 등을 통해 암호화폐 중심 경제 전략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한편, 2023년 기준 국가가 보유한 비트코인은 약 2,800 BTC로 추정되며, 이는 약 8,000만 달러(2023년 당시 기준)에 달합니다.
엘살바도르의 이 같은 실험은 기술 혁신과 경제 전략이 결합된 상징적인 사례로 평가되지만, 동시에 비트코인 가격 하락 시 국가 경제가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리스크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엘살바도르 외 채택국의 흐름
엘살바도르 외에도 비트코인 또는 기타 암호화폐를 법정화폐 혹은 공식 결제수단으로 인정하려는 움직임은 전 세계 여러 국가에서 관찰됩니다. 예를 들어,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은 2022년에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채택했으나, 기반 금융 인프라가 미비하여 실행력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나이지리아, 베네수엘라, 파라과이 등의 국가는 자체 암호화폐 개발 또는 부분적 통화대체 수단으로 암호화폐를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필리핀이나 베트남과 같이 디지털 송금이 활발한 국가들에서는 실질적 결제 수단으로 쓰이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
이처럼 채택국들은 대체로 자국 통화의 불안정, 높은 인플레이션, 낮은 금융 포용도 등의 문제를 안고 있으며, 암호화폐를 새로운 해법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국가가 법정화폐 수준으로 암호화폐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며, 일부 국가는 디지털 결제 수단 또는 자산 보존 수단으로만 제한하는 등 접근 방식은 다양합니다.
국제 사회의 규제 및 대응
암호화폐가 법정화폐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국제 사회의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IMF는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채택을 비판하며, 금융 안정성과 소비자 보호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미국 재무부와 유럽중앙은행(ECB) 역시 각국 정부에 암호화폐 관련 규제를 강화할 것을 촉구하고 있으며, 글로벌 금융 규제기관들은 공통의 감독체계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암호화폐 거래의 투명성과 추적 가능성 확보를 위해 각국에 KYC(고객알기제도) 및 AML(자금세탁방지) 기준을 적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반면, 일부 국가들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개발을 통해 암호화폐 확산에 대응하고 있으며, 이는 비트코인과 같은 탈중앙화된 암호화폐와는 달리 중앙 통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암호화폐를 법정화폐로 채택하는 움직임은 기술 혁신과 금융 주권이라는 이점을 제공하는 동시에, 국제적 협력과 규제 강화라는 새로운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각국의 선택은 경제 여건, 정치 환경, 기술 인프라에 따라 달라질 것이며, 이 변화는 앞으로도 글로벌 금융 질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입니다.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한 국가는 아직 소수이지만, 이들은 기존 금융 시스템에 대한 도전과 대안의 실험장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엘살바도르의 사례는 암호화폐 법정화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으며, 향후 다른 국가들의 움직임과 국제사회의 대응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암호화폐에 관심 있는 투자자나 정책입안자라면, 이 변화의 흐름을 면밀히 관찰하고 적절한 대응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